한 평생을 사는데 인생의 길잡이가 되는 지침서로서는 '명심보감(明心寶鑑)'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된다. '마음을 밝게 하는 것으로 보배로 삼으라.'는 '명심보감'은 똑같은 구절이라도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맛이 난다.
다산 정약용 선생도 전남 강진에서 18년 동안 귀양생활을 하면서 명심보감을 암송함으로써 끓어오르는 울분을 달랬다고 한다. 자녀들에게 보내 편지 중에 명심보감의 '거가사본(居家四本:집안생활에 네 가지 바탕)'을 인용하였다.
"책을 읽는 것은 가문을 일으키는 근본이 되고, 올바른 이치을 따름은 집안을 보존하는 근본이 되고, 부지런하고 검소함은 가정을 다스리는 근본이 되고, 화목하고 순종함은 집안을 정돈하는 근본이 되니, 이 네 가지를 책상위에 써 놓고 힘써 실천하라!" 라며, 독서(讀書)와 순리(順理)와 근검(勤儉)과 화순(和順)을 강조하였다. 네 가지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면 '독서'가 으뜸일 것이다. 필자도 명심보감의 명언을 암송하면서 심신 수양에 큰 도움이 되었고, 좋은 글을 메모하는 습관도 배양된 것 같다. 그러나 필자가 책을 손에서 책을 떼지 않은 것을 유년시절의 뼈아픈 추억이 있다.
필자는 초등학교 4년이 될 때까지 한글을 전혀 깨우치지 못한 지진아(遲進兒)였다. 거기에 더하여 사팔뜨기였던 관계로 주변사람들로부터 '먼 산 두루 배기'라는 치욕적인 별명까지 붙었다. 학교나 집에서까지도 '바보' 취급을 받으며 불우한 나날을 보내던 4학년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큰집 사랑방에 들렀더니 당시 농고 1학년이던 사촌 형님이 한글을 원리로써 가르쳐 주었다. 그랬더니 그날을 어쩐 일인지 몰라도, 단박에 깨우칠 수 있었다. '나 같은 바보도 책을 읽을 수 있다니!' 너무나 신나고 신기하여, 글자란 글자는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수불석권'이란 말과 같이 책을 손에서 떼질 않았다.
'동병상련'이랄까? 필자의 유년시절을 생각하면 증평이 자랑하는 인물을 김득신이 생각난다. 증평읍에는 '독서광 김득신 도서관'이 있고, 삼기저수지 수변산책로인 '등잔길'도 그를 상징한다. 천성이 우둔하여 그는 "천성이 우둔하다고 스스로 포기하지 마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겠지만 결국엔 이룸을 얻었다. 모든 것은 힘쓰느네 달려일을 따름이다" 라고 하였다. 그래서 1만 번 읽은 책만 해도 36권에 달했으며, 사마천의 '백이전'은 11만3천번을 읽었다고 한다. 드디어 59세에 과거에 합격하여 83세까지 장수하였다.
궁하면 통한다는 '궁즉통(窮卽通)'이랄까? 4학년에야 겨우 깨친 한글이 글 읽는 재미로 연결되어 궁극에는 교사까지 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교육현장에서도 학생들에게 명심보감을 암송토록 지도하였다. 그때 제자들을 지금도 만나면 그것이 '인생에 길잡이가 되었다'고 한다.
요즘에는 필자 나름 걸으면서 명언을 암송하는 '경행(經行)'을 독창적으로 개발(?)하였다. 산책하면서 아를다운 글귀를 암송하며 마음을 정화하는 것이 경행이다. 경행은 산스크리트어 비하라(vihara)를 번역한 말로 '수행 중에 졸음을 피하고, 가볍게 걷는다'는 뜻이었지만, 경전이나 아름다운 글귀를 암송하며 걸으니 오히려 덜 피곤하고 정신도 맑았다.
청주주변엔 무심천과 문암생태공원, 그리고 대청댐 주변 등에도 걷기 좋은 길이 많아서 좋다. 좋아하는 글귀를 암송하면서 그곳들을 경행하는 '힐링의 장'으로 활용하기를 권한다.
삼기저수지의 수변 산책로인 '등잔(燈盞)길'! 등잔이라면 독서가 떠오른다. 옛날 우리 조상들을 호롱불을 밝혀 책을 잃었다. 등잔에는 어머니의 정성과 지혜가 담겨져 있다. 좋은 글을 통하여 마음을 밝히고 정화시키자! 마음에 맑은 물을 공급함으로써 몸에도 맑고 밝은 물을 공급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