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통영 고속도로를 타고 단성IC를 빠져나가 우회전으로 1키로쯤 가면 문익점 선생의'목화시배지(木化始培地)'가 있다. 고려말 목화가 재배되기 시작함으로써 우리나라는 복식사(服飾史)에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이전까지 우리 조상들은 삼베와 칡으로 엮은 갈옷을 입었다고 한다. 삼베는 보온력이 약하여 겨울철엔 추위로 고통이 심하여 동사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목화는 올을 뽑아 잘라서 단층을 확대해 보면 미세한 구멍이 나 있어 보온력이 뛰어나다고 한다. 조선시대엔 부의 상징으로 재산 축적의 수단이 되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나라를 잃은 경술국치 이듬해인 1911년 궁벽한 산골 마을에 가난한 농사꾼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아홉 살에 양친을 여의고, 각고의 노력으로 자수성가하여 스물여섯에 열아홉 살 된 어머니를 맞이함으로써 가정을 이룰 수 있었다. 어머니는 영리하고 솜씨가 뛰어나 무슨 일이든 척척 잘했다. 지저귀는 산새를 벗 삼아 두 분은 억척으로 일했으니 짓기만 하면 풍년이라 나날이 집안 창성이었다.
하루는 어머니의 제안으로 목화농사를 제안하였다. 재배하기가 까다롭고 일손이 많이 들지만 잘 만 되면 큰돈이 되겠기에 시작했다. 봄에 씨 뿌리면 2주가 되면 떡잎이 나기 시작하여 가지가 생기고, 10주가 되면 꽃망울이 맺기 시작하여 다래가 생기고, 23주가 되면서부터 목화솜이 피어난다. 목화농사도 풍성히 잘되었다. 정성어린 땀방울이 방울방울! 주먹만한 목화송이가 주렁주렁! 목화가 풍성하다 보니 마음도 풍년이라! 모든 게 힘든 줄 모르고 술술 잘 풀리었다.
기나긴 겨울밤을 낮 삼아 어머닌 밤새우며 솜 일을 했다. 씨앗을 뽑아내고, 솜을 부풀려 부드럽게 하고, 부풀린 솜을 서로 엉키게 하여 꼬챙이로 말아! 그것을 가지고 물레를 통해 실을 뽑는다. 그리고 뽑은 실을 가지런히 하고 실의 강도를 높이기 위하여 풀을 먹인다. 그 다음 실을 날줄과 씨줄로 베틀에 올려 베를 짠다.
솜처럼 부푼 가슴으로 어머니는 석유등잔에 불을 밝혀 동짓달 기나긴 밤이 지새는 줄 몰랐단다. 한 올 한 올이 쌓여 한 치 두 치가 되고, 한 치 두 치가 모여 한 자(尺) 두 자가 되더니, 한 자 두 자가 모여 한 필(匹)이 되었다. 그러기를 3년! 어머니는 드디어 베를 백 필(匹)이나 짰다.
마을 사람들의 놀람과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 집 새색시 음식 솜씨도 좋더니만 베를 백 필(匹)이나 짰다고 하네!" 베 백 필이라! 논을 사면 열 마지기요, 읍내에서 집 한 채는 족히 살 만한 재산이었다. 어느 날 어머니는 "여보 이걸 가지고 읍내 군청 앞에 집은 좀 허름하지만 100평짜리 집이 있다는데 그걸로 살까?"아버지에게 말했다 "조금 기다려 봐!"
때 마침 일본에서 귀국한 아버지의 집안형님뻘 되는 분이 있었다. "여보 형님이 잘 팔아 준다니 내 줘!"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베 백 필을 내줬다. 하루 이틀! 일주일 열흘! 일거 후 무소식이라! 학수고대 하던 어머니 가슴은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한 달 만에 기름때가 흐르는 초췌한 몰골로 아저씨는 돌아왔다. 3년간 땀 흘려 애써 모은 베 백 필을 하룻밤의 노름판에 날린 것이다.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다.
"빚보증 서는 자식 낳지도 말아라!"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평생을 남에게 베풀기만 하셨다. 배고픈 사람만 보면 내 먹던 밥도 기꺼이 내 놓았다. 어머니는 평생을 두고두고 '베 백 필(百匹)!'성화였지만 아버지는 연연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날 지극히 아끼셨다. "병연이는 잘 될꺼야!" 아량이 바다 같이 넓었던 아버지, 세월이 흐를수록 나는 그런 아버지가 그립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세상을 뜨신 지도 10년이 넘었다. 두 분께서는 3년간 땀 흘려 모은 '베 백 필'을 하룻밤에 날렸어도, 우리들 7남매를 모두들 성가시키고 90세를 일기로 건강하게 사시다가 건강하게 가시었다.
입가에는 미소가 얼굴에는 평화가,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바람처럼 물처럼, 걸림 없이 사시다가 걸림 없이 떠나신 아버지! 평생토록' 베 백 필'을 놓지 못하셨던 어머니! 이제는 놓으시고 편안히 쉬시길!